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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의 글

제가 바보상자라구요?

하나님의예쁜딸 2017. 9. 24. 16:06

 

 

 

 


                     
      --제가 바보상자라구요?-- 늘샘 / 초희 제겐 이름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라 합니다. ((방송된 영상 전파를 받아 그 영상과 소리를 재현시켜 주는 기계))라고 하는데요 다 아시죠? 텔레비죤 오픈국어 텔레비죤은 "텔레비전"의 문화어인 것도 잘아시죠? 그런데요 작명가 미상, 언제부터인가 제 이름이 그만 바보상자로 바뀌어버렸어요 치솟는 제 인기를 시샘하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저를 추락 시킬 의도인 듯 싶어요. 그러나 영원한 제 이름 텔레비전 그 인기가 어디 가나요? 안방과 거실 문갑위에 벽 면까지 나의 영역은 그 어떤 가전제품 보다 가장 우선순위의 자리에서 비켜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영상과 소리를 재현시켜 주는 최고의 똑똑함이 아닐까요? 무궁무진한 프로그램 숫자만 누르면 입맛에 맞출 수 있습니다. 5대항 6대주를 비롯 지구촌 열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언어, 문화, 정서가 다른 세계인들을 안방에서 만나게 됩니다. 정치, 문화, 드라마, 스포츠, 종교는 물론 다양한 장르의 음악까지 나는 모르는게 없고 시청자에게 전달함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특히 드라마는 어떻습니까? 최근에 종방한 왕가네 식구들을 보세요. 같이 분노하고 덩달아 울고 악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 일 처럼 두 주먹을 쥐며 얼마나 분개했던가요 선한 왕교감 선생님께 무한한 동정을 보내며 악이 선 앞에 무너질 때 시청자들은 큰 박수를 치십니다. 아침 드라마는 주부들에게 더 인기입니다. 집안일을 뒤로 미루시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전개되는 스토리에 울고 웃으십니다. 그렇게, 분노할 일에는 분노하고 눈물을 흘릴 때는 펑펑 울으실 때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이어진다 하니 나 처럼 지혜로운 가잔제품이 과연 어디 또 있을까요? 한 마디만 더 곁들인다면, 부한자와 빈한자를 통해 그들의 사는 모습을 봅니다. 거드름 피우며 고급 소파에 앉아 미쓰 문, 아줌마, 김여사, 이실장, 김비서 라고 부르기만 하면 안되는 일이 없이 움직여 주는 부한 자의 마누라로 사는 여자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왜 그리도 많은지요? 유산을 둘러 싼 아귀다툼, 죽어도 좋아 삼각관계, 孝와 不孝 노인과 젊은이의 삶, 스승과 제자, 윤리와 도를 저버린 불륜의 현장 등등 이런 사실에 근거한 상황들의 마지막 심판을 봅니다. 그들의 종말은 언제나 처참 그 자체가 됩니다. 나를 통해 비춰지는 영상을 통해 때론 삶의 활력이 되고 매마른 영혼에 단비를 원하시면 기독교 방송에 채널을 맞춰보세요 나는 한 낮 기계일 뿐 이지만 내 능력은 무한하여 가물어 매마른 영혼에 단 비까지 내리게 한답니다. 어느 순간... 진정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내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사 먼저 세상의 혼탁한 것들에서 멀여져야한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비디오 테잎, 트롯트 테잎 등을 소각시켰고 티비 드라마에 매료되어 내 영혼을 뺏길까 봐 드라마 시청을 금했습니다. 그 귀한 시간에, 병상에 있는 분들께 안부 전화를 드렸고 무릎꿇어 기도하는 시간으로 세상의 문화와 멀어져가는 연습을 쉬임없이 하던 중, 최근에, 채녈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지성이 주인공인 sbs 드라마 "피고인"을 접하게 되었고 그만 매료되어 열심히 매회 때마다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악과 선의 사이에세 불의가 망하고 善 이 승리하는 과정들이 어찌 스릴이 있고 재미가 있었는지 ~~~~~ 혹여, 내가 다시 성도의 삶에서 벗어나 세상의 유혹의 덫에 걸리진 않았나 라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지만 마지막 까지 시청을 했습니다. 그 후로도, kbs 2 tb 에서 방영 된 김영철 分 이 주인공인 "아버지가 이상해"는 눈물까지 쏟으며 愛시청을 했답니다. 바보상자가 제시하는 갖가지의 프로그램들이 때론 , 사회를 병들게하고 비뚤어진 인성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부분도 있지만 좋은 프로는 오히려 매마른 가슴에 훈훈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보상자라고 생각하면서 도 바보상자를 사랑하나봅니다. 하여, 바보상자가 한 마디 이르시되 시청자께서 나를 사랑해주시기에 나 또한 시청자를 사랑합니다.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 텔레비전은 존재의 가치가 소멸 될 밖에요 사랑은 국한된 개인의 기쁨 뿐 아니라 아픔과 슬픔까지도 나 텔레비젼의 몫으로 여겨 사랑하는 시청자와 나누겠다는 "약속" 입니다. 저는 그렇게 시청자를 사랑합니다.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런지요? 이래도 나 텔레비전을 가리켜 바보상자라 하시겠습니가? 이제 저를 가리켜 텔레비전이라 불러주세요. 저는, 바보상자도 마귀상자도 아니랍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초희 생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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